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애정을 느끼고,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싶어 하는 건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정서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사람들은 그토록 원하는 사랑이 눈앞에 있을 때조차 가까이 다가가지 못합니다. 마음을 열고 싶지만 두렵고, 함께 있고 싶지만 거리를 두게 되는 이 복잡한 감정의 배경에는 단순한 성격이나 기분의 문제가 아닌, 심리적 뿌리와 깊은 내면의 상처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흔히 관계 회피형 애착을 보이지만, 동시에 그 속에는 애정에 대한 갈망이 누구보다도 강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사랑을 밀어내고, 친밀감을 원하면서도 가까워지는 상황에서는 불안을 느끼는 이 이중적인 심리는 어디서부터 비롯되는 걸까요?
이 글에서는 사랑을 원하면서도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의 내면 심리와 그 이면에 깔린 애착의 상처, 그리고 삶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는지를 심층적으로 탐색해보고자 합니다.
사랑받고 싶지만 가까워지기 두려운 사람들: 모순된 욕구의 심리학
애정 갈망과 관계 회피가 공존하는 심리 구조
‘가까이 오지 마, 하지만 떠나지 마’라는 말은 이중적인 애착 양식을 가진 사람들의 내면을 가장 잘 표현해줍니다.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애정이 불안정하거나 예측 불가능했던 환경에서 성장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즉, 사랑은 따뜻하고 기분 좋은 감정임과 동시에 때로는 고통과 상처를 동반한 기억으로 내면에 각인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원하면서도, 그 감정이 커질수록 상처받을 위험이 떠오르고, 가까워질수록 본능적으로 거리를 두게 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이중적인 감정을 가진 사람들을 이중애착 또는 회피-불안형 애착 스타일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외로움이나 정서적 연결에 대한 욕구는 강하지만, 실제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깊어지는 친밀감에 불안을 느끼기 때문에, 자꾸만 밀고 당기는 방식으로 관계를 유지하려 합니다. 상대가 다가오면 불안하고, 멀어지면 또 외롭습니다. 이런 내면의 충돌은 때로는 상대방에게 혼란을 주고, 자신 역시 지속적으로 감정적으로 지치게 만들곤 합니다. 이들이 이렇게 모순된 행동을 반복하는 이유는 단지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과거 경험 속에서 형성된 무의식적인 자기 방어기제 때문입니다.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가 위험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릴 적 중요한 양육자로부터의 사랑이 때로는 조건적이거나 비난과 함께 제공되었다면, 이 사람은 ‘사랑 = 불안’이라는 공식을 무의식에 새기게 됩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이후의 대인관계에서도 ‘지나친 애정은 나를 해칠 수 있다’는 경계심을 가지고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 결과는 반복적인 관계 실패, 혹은 관계를 아예 회피하려는 패턴으로 이어집니다. 연애를 해도 깊이 정서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상대가 감정적으로 가까워질수록 급격히 차가워지거나 거리를 두는 경향을 보이게 됩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내면에는 ‘나도 사랑받고 싶다’,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맺고 싶다’는 욕구가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 모순된 심리가 끊임없이 내면의 갈등을 만들고, 때로는 자책과 외로움, 고립감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처럼 사랑을 원하는 마음과 그것을 피하려는 마음이 공존하는 상태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반복적인 갈등을 일으킵니다. 감정 표현이 서툴고, 스스로도 자신의 진짜 욕구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상대방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왜 이렇게 냉정해졌지?’라는 혼란을 겪게 됩니다. 결국 이러한 관계 속에서 가장 외롭고 고통스러운 사람은 본인일지도 모릅니다.
어린 시절의 애착 경험이 현재 관계에 미치는 영향
사랑을 피하려는 내면의 욕구는 단순히 지금의 성격이 아니라 과거, 특히 어린 시절의 애착 형성 과정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처음으로 ‘사랑’을 배우는 관계는 부모나 양육자와의 관계입니다. 이 시기의 경험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관계를 맺는 방식에 깊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한 아이는 타인에 대한 신뢰감을 가지고 성장합니다. 반면 부모가 반복적으로 무관심하거나, 갑작스럽게 친밀했다가 차갑게 식는 등 일관되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면 아이는 ‘사랑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게 됩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자란 사람은 자존감이 낮아지기 쉽고,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거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줄 사람은 없다’는 인식을 가지게 됩니다.
특히, 부모로부터의 관심과 애정이 조건부로 제공된 경우, 예를 들어 ‘성적이 좋아야 칭찬해준다’, ‘말을 잘 들어야만 안아준다’ 같은 방식의 사랑은 아이에게 사랑은 반드시 무언가를 증명해야만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이 경우, 성인이 되어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순간에도 그 사랑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의심하거나 거부하게 되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결국 스스로 사랑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누군가의 애정을 받을 때 오히려 불편함이나 압박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또한, 아동기나 청소년기에 트라우마나 상실 경험이 있었다면, 이로 인한 정서적 상처가 성인이 되어 친밀한 관계를 맺는 데 있어 큰 장애물이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이별, 부모의 이혼, 부모의 부재 등은 ‘사랑은 결국 떠난다’, ‘사랑은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을 강화시킵니다. 그렇게 형성된 내면의 신념은 이후 삶에서 깊은 애정을 느끼는 순간마다 불안과 공포를 자극하게 되고, 관계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자기 방어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심리 구조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에 본인조차 그 원인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그냥 혼자가 편해”, “사람에게 기대는 건 싫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실은 무의식적으로 관계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을 품고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어떤 애착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과거의 경험이 현재 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인식하는 것이 이 복잡한 감정을 풀어내는 첫걸음이 됩니다.
이 모순된 감정을 어떻게 치유하고 건강한 관계로 나아갈 수 있을까?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가까워지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 좌절을 반복하게 됩니다. 마음을 열고 싶은 순간에도 머릿속에서는 ‘이러다 상처받으면 어쩌지’, ‘또 버림받을지도 몰라’라는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그 불안은 자기도 모르게 행동으로 드러나고, 상대방은 그 변덕스러운 태도에 상처를 받습니다. 이런 반복적인 관계의 패턴을 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첫 번째로 중요한 건 자기 인식입니다. 나는 왜 이토록 사람과 가까워지는 것이 두려울까,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고 해도 왜 믿지 못할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과거의 경험을 되짚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은 경우, 그 뿌리는 유년기의 애착 경험에 있습니다. 과거에는 어쩔 수 없는 환경이었더라도, 지금은 나 스스로가 나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어른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첫걸음입니다. 어릴 적의 상처는 지금의 내가 겪는 불안의 원인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곧 나의 본질은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것이 핵심입니다.
두 번째로는 정서적 반응을 인식하고 조절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까워질수록 불안이 커진다면, 그 감정에 휩쓸려 갑작스럽게 거리를 두기보다는 그 불안을 알아차리고, ‘아, 지금 또 내가 과거의 상처를 현재의 상황에 투영하고 있구나’라고 말해주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감정을 억누르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불안을 말로 설명할 수 있다면 상대와의 관계는 조금씩 안정될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어서 좀 혼란스럽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해보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건강한 관계를 경험하고 학습하는 기회 만들기입니다. 이전까지의 삶에서 경험했던 관계가 대부분 상처와 고통으로 가득했다면, 사랑은 두려운 것으로 각인되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관계에서 따뜻함과 안전함을 경험하게 되면 우리의 내면은 서서히 변화합니다. 예측 가능한 사람, 꾸준히 애정을 표현하는 사람, 내 감정을 존중해주는 사람과의 관계는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할 수 있지만, 결국 우리 안의 불안을 조금씩 잠재우고, 사랑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심리상담이나 치료적 개입이 큰 도움이 됩니다. 혼자 힘으로 내면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회복하는 것이 어렵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는 것도 충분히 현명한 선택입니다. 특히 회피형 애착이나 불안형 애착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상담은 감정의 패턴을 인식하고, 안전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는 소중한 도구가 됩니다. 상담을 통해 감정과 행동의 연결고리를 이해하고 나면, 더 이상 무의식적으로 상처받을까봐 사랑을 밀어내는 일을 반복하지 않게 됩니다.
사랑은 나에게 위험한 것이 아니라, 따뜻하고 회복적인 경험일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싶은 마음, 그 마음만 있다면 변화는 언제든 가능합니다. 가까워지는 것이 두렵다고 해서 영원히 혼자일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건, 내 마음속에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두려움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두 감정을 모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진짜 건강한 사랑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받고 싶지만 가까워지기 두려운 사람들, 그들은 결코 이기적이거나 냉정한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사랑을 갈망하며,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여린 마음을 품고 살아갑니다. 그 모순된 욕구 속에는 과거의 상처, 애정 결핍, 애착의 혼란이 얽혀 있으며, 이는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채 삶의 여러 관계 속에서 반복되곤 합니다. 하지만 이 복잡한 감정의 흐름을 이해하고, 내면의 상처를 인식하며, 감정과의 거리를 좁혀 나간다면 우리는 결국 사랑을 밀어내는 삶이 아니라, 사랑을 받아들이고 주고받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을 깊이 이해하는 것, 그것이 진짜 사랑의 시작일지도 모릅니다.